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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mo
star5.0
밤의 해변에서 혼자 : 어쩌면 다시 혼자가 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홍상수라는 악마적 재능 지금까지 홍상수의 모든 영화들을 봐왔지만 그의 재능을 악마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악마적이다. 이 영화는 마치 악마가 자신의 악마적 세계를 위해 순교하기를 자청한 사랑스런 희생양을 위해 써내려간 마지막 연서이자 선물같은 영화다. 그리고 베를린영화제는 감독상이 아닌 여우주연상을 수여함으로써 홍의 악마적 재능에 농락당한 희생양의 위령제를 완성했다. 2. 구원을 찾아 떠난 길에서 악마를 만나다 자본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가장 큰 딜레마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물질과 육체로 쉽게 쾌락을 향유할 수 있지만 그 곳에선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모두가 ‘진짜’인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대다수는 ‘가짜’인 노예로 살아가며, 정작 ‘진짜’이자 주인으로 살아갈 사람은 정해진 소수(금수저, 비범한 천재)라는 점이다. 악마를 위해 순교한 희생양인 영희, 김민희는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면서도 우리를 농락한 자본주의적 세계를 이탈하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김은 이미 20대 초반에 모델계란 육체성의 세계에서 쾌락과 죽음을 체험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영화계란 정신의 내적 세계로 망명한 인물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4307245&code=140199) 그리고 그녀 자신의 삶에서 타인이 주인이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듯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30대 초반에 <화차> <지맞고> <아가씨>를 통해 내적 자기 완성을 일궈낸 인물이다. 니체가 말한 뛰어넘는 인간 ’초인’, 주인의 삶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탑클래스를 경험하며 강력하게 형성된 그녀의 자아는 ‘연기 잘하는 여배우’ 정도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은 마침내 홍을 만났다. 김이 망명하기로 결심한 정신적 내적 세계에서 스스로 ’초인’이 되어 세계영화제가 보증한 위대한 영화 왕국을 건설했고, 그 왕국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악마를 <지맞고>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악마는 그녀에게 헌정하다시피한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그녀를 모델에서 배우로서 약 15년만에 다시 정점에 등극시켰다. 김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구원이자 해피엔딩이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스포일러>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는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는 척 위선으로 살아가는 명수로 그려진다.) 현재까지 김에게 홍은 대체될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홍에게 과연 김은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인지 의문이 생긴다. 3. 홍상수라는 악마적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 홍의 악마성은 늙어버린 육체성(a)을 상쇄할만큼 자본주의적인 막대한 물질적 유산(b)와 반자본주의적인 정신의 초인성(c)이란 양가성으로 구축된 왕국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는 영화계에서만큼은 주신 제우스이며, 철학의 소크라테스이고, 봉건국가의 왕이다. 그렇기에 항상 그의 주위에는 그의 악마적 재능과 권력을 선망하고 모방하려는 지지자들(승희 역)과 ‘예쁜’ 여성들이 몰려 든다. <스포일러> 영화 마지막 10분에서 홍은 문성근(상원 역)으로 현현한다.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은 어쩌면 그 어떤 ‘예쁜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이다. 그가 악마적인 이유는 자신만을 사랑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망가뜨려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방함으로써 개성을 망가뜨리고(승희), 자신의 순교자가 되면서 인생을 망가뜨리게 만든다(영희). 그는 자신의 악마적 재능과 권력을 선망하는 ’예쁜’ 여자들을 농락하고, 문학 속에나 있을 법한 ‘예쁜 여자’들과 비극 속의 주인공이 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뿐이다. (“후회하는걸 누가 좋아서 하냐. 그것도 자꾸 하다보면 달콤해져.” / 소설을 읽고 정색하며 제자들에게 "괜찮지 않냐?") 그런 삶을 향유하게 할 ‘예쁜’ 대상들의 공급은 그치지 않으니 그 중에서 영희는 단지 ‘대체가능하지만 아까운 예쁜 여자’일 뿐이다. 영희에게 상원은 손으로 잡으면 잡을수록 빠져나가는 모래같은 존재다. 상원은 비겁한 눈물을 쏟고는 자신을 잡으려는 영희의 손에 이별선물이자 자신의 대체물인 책을 쥐어준다. 4. 어쩌면 언젠가 다시 혼자가 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홍과 김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고백해서 화제가 됐던 시사회 기자회견에서 김민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저에게 다가올 상황이나 놓여진 상황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가올 상황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비웃는 것처럼 언젠가 홍과 김의 사랑도 끝이 올 것이다. (로셀리니와 버그만은 8년 만에 헤어졌다.) 끝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홍이 정말 솔직하고 진짜로 살려는 사람이라서 상원처럼 초인인 동시에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라면, 아마 희생양을 자처한 김에 대한 의리와 연민으로 지속되는 관계일수도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악마적 재능이 사랑의 시작이었고, 이 영화 자체는 사랑의 끝을 이야기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언젠가 필연적으로 예정된 이별이 오기 전에 홍이 김에게 주는 이별선물이자 이별 이후의 지침서로 선사한 영화로 읽혔다면 지나치고 무례한 오독일까. <스포일러> 추운 겨울바다, 해가 저물어가는 백사장에 누워 자며 상원이 나오는 꿈을 꾸던 영희를 지나가던 행인이 깨운다. “일어나야죠. 이러다 큰일납니다. 일어나야죠.” 영희는 앞으로 상원 없이도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나스타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로셀리니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일어선 것처럼. 방이 세 개나 되지만 아무도 머무르려 하지 않는(지영도 준희도 영희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타인들은 가짜로 살기에 응원과 위로도 가짜다) 유배지에서 다시 일어서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그 날까지 그녀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10/10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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